본문 바로가기

낙태

캐나다의 낙태 정책 :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재생산권

캐나다의 낙태 정책 :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재생산권

김양숙 캐나다 토론토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의 기념하여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가 국제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재생산권(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향상에 앞장서겠다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이 날 캐나다 수상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는  국제사회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데 캐나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하여  6억5천만 캐나다 달러의 예산을 투입,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이 저발달 혹은 부인되고 있는 국가에서 성교육과 가족계획 교육 및 여성에 대한 의료 지원을 넓히는 활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캐나다가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및 재생산권 분야에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펼치겠다고 나서는 배경을 이해하는데 있어 눈여겨 볼만한 것은 캐나다의 낙태 정책이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캐나다에는 낙태법(낙태를 규율하는 일체의 법률. 예컨대 우리나라의 모자보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낙태는 다른 의료행위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선택과 의사의 양심 및 직업윤리에 따라 행해지며 국가가 합법적/불법적 낙태를 규율하는 법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타의 의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낙태시술 또한 국가 보조를 받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온타리오(Ontario)의 경우 병원에서 행해지는 낙태시술의 경우 주의료보험이 비용을 전액 보조한다.

물론 캐나다 여성들이 이러한 정책을 손쉽게 쟁취한 것은 아니다. 1986년부터 1969년까지는 캐나다에서도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제외하고는 낙태가 범죄로 취급되었다. 1969년 피에르 트뤼도 (Pierre Trudeau, 현 수상의 아버지)는 이러한 법령을 완화 하여 여성이 요청하면 세 명의 의사가 위원회를 열어 이른바 치료 목적의 낙태( therapeutic abortion) 를 시행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시 보수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상 의사들이 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거나 낙태를 허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많은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은 낙태 시술에 생명을 잃었다. 캐나다 사회에서 낙태에 대한 인식을 바꾼 결정적인 인물은  1967년부터 몬트리올에서 낙태 합법화 운동을 전개한 헨리 모젠달러 (Henry Morgendaler) 박사인데,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5000건 이상의 안전한 낙태를 시술 했다고 밝혀 투옥 된 이후 긴 법정 투쟁을 펼쳤다. 1988년에 이르러 캐나다 고등법원은 낙태에 대한 규정이 여성의 헌법상 권리(개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생활 등)를 침해한다고 판시, 낙태법을 없애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88년 고등법원의 결정 이후 캐나다는 낙태에 관한한 특별한 법적 규율을 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캐나다 의료 협회(Canadian Medical Association)는 여성들에게 낙태를 선택 할 경우 20주 전에 시술 할 것을 권하고 20주를 넘길 시 의사의 결정에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낙태를 합법화할 경우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는 낙태 규제론자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낙태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없앤 후 캐나다의 낙태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2014년 1000명 가임기 여성 당 11.6명이 낙태시술을 한 것으로 보고되어 낙태를 규율하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보다도 낙태율이 낮다.  또한 90% 가량의 낙태 시술이 12주 안에 이루어 지고 있으며 음성적인 낙태 시술을 선택하여 여성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최근 10년 동안 보고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95년 캐나다 연방정부는 주정부들에 낙태 시술에 대해서도 주 의료보험 혜택을 줄 것을 요구하였는데, 대부분의 주에서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뉴브런즈윅( New Brunswock) 은 현재까지도 이를 거부, 뉴브런즈윅에서는 낙태 시술 시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또한 낙태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pro-life views)는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며, 일부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의사들이 자신의 양심과 직업윤리를 이유로 낙태 시술을 행하지 않아 이런 지역의 여성들은 사실상 헌법이 규정하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실질적인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