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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낙태죄 논란]불법·가짜 낙태약 판친다···미프진 합법화?

[낙태죄 논란]불법·가짜 낙태약 판친다···미프진 합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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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온라인에서는 자연유산 유도약인 미프진을 광고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유산유도약 미프진, 인터넷서 불법 거래 만연
7주전 복용약 30만원대, 12주전은 50만원대 등
중국제 가짜약까지 기승…절박한 여성들 이중고
여성계 "의사 지도 하에 복용하도록 합법화해야" 
의료계 "불완전유산, 패혈증 등 부작용도 심각"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더는 아기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지인 소개로 미프진을 복용했어요. 다행히도 약효 잘 봤고 산부인과 가서 검사하니 자연유산이라고 하네요. 필요하신 분은 XX병원 상담 톡 남겨드리겠습니다." 

 청와대가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이 진행 중인 낙태죄 폐지에 대해 입장을 내놓으면서 공론화 계기를 마련한 가운데 자연유산 유도약인 미프진(Mifegyne)의 도입이 가능해질지 여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합법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현재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암암리에 미프진이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다. 여성 회원들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임신중절수술을 고민하는 글에 본인이 미프진으로 중절을 했다며 구입처를 알리는 광고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XX병원' 혹은 'XX약국'이라는 이름을 내건 이들은 "12주 이내 낙태가 합법인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낙태수술보다 불임과 부작용이 없는 미프진으로 안전하게 약물 낙태한다"며 "현재 세계 119개 국가 연간 7000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복용하고 있다"고 광고한다. 
 
 통상 7주전 복용약은 30만원대 후반, 12주전 복용약은 50만원대 중반으로 가격이 책정돼 있다. 결제는 홈페이지 내 실시간 상담 이후 무통장입금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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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23만명이 청원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2017.11.26. (사진=유튜브 캡쳐) photo@newsis.com


 일명 '먹는 낙태약'으로 불리는 미프진은 자궁에 착상된 수정란에 영양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이다. 자궁과 수정란을 분리시키는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자궁을 수축시켜 분리된 수정란을 배출시키는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 성분을 정제해 만든 약이다. 

 1980년대 프랑스의 한 제약회사가 개발한 이 약은 2000년부터 미국에서 판매가 시작됐고 2005년엔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의약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미프진 도입을 합법화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은 전신마취가 필요하고 자궁천공 등 부작용을 유발하는 흡입식 낙태수술보다는 약물 유산이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올린 글쓴이는 "미프진을 12주 안에만 복용하면 생리통 수준의 통증과 약간의 출혈로 안전하게 낙태가 된다"며 "불법 낙태 수술을 받을 경우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온라인에 만연한 사례처럼 약물 거래가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가짜 약을 먹고 심각한 출혈이 일어나는 등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청원인도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자연유산 유도약을 판다며 중국제 가짜약을 파는 등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진 여성들의 고통을 2배, 3배로 증가시키고 있다"며 "미프진이 합법이라면 정품약과 올바른 처방전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단체들도 정품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유산유도약을 먹는 것은 낙태죄가 불법이라서 나타나는 반작용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홍연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는 "미프진의 원리를 살펴보면 불가피하게 다량의 출혈과 두통 등의 증상이 수반될 수는 있다"면서도 "지금 유통되고 있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거론된다면 가짜 약일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프진이 합법적으로 도입된다면 초기에 의료진의 약물에 대한 지도, 48시간 가량의 모니터링 등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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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 및 여성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11.09.


 의료계에서 안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미프진 합법화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량의 출혈이나 불완전유산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충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구토나 발열, 복통 등은 물론이고 출혈이 많으면 약을 먹고도 다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며 "태반 일부가 자궁 안에 남아있는 불완전유산의 경우엔 감염의 우려가 있어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에 다다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회장은 "미프진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만약 도입이 되더라도 의사의 지도 하에 복용하고 복용 이후 다시 내원해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먹는약으로 유산이 가능해 질 경우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기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은 성명에서 "성관계를 하면 임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데도 성관계라는 원인은 선택하면서 결과인 임신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방식"이라며 "낙태의 문을 열었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생명 경시 풍조가 더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 활동가는 "낙태죄가 폐지된다거나 미프진이 도입된다고 '신난다, 또 임신하고 또 약을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여성은 없을 것이고 그런 상황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라며 "피임실천율을 높이고 정확한 성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면 안전하고 의료적 지원을 해야한다는 의미에서 미프진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shley85@newsis.com